비상금 통장, 언제 꺼내야 할까

Q. 비상금은 얼마나 모아야 하나요?

작년 여름, 에어컨이 고장 났다. 수리비 견적이 68만 원이었다. 그날 저녁 통장을 봤는데 비상금이 정확히 70만 원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비상금은 ‘얼마가 맞는가’보다 ‘내 생활에서 실제로 터지는 일들이 얼마나 비싼가’를 먼저 봐야 한다는 것을.

일반적으로 월급의 3개월분을 권하는데, 이건 너무 추상적이다. 대신 지난 1년간 예상 밖에 쓴 돈들을 적어보자. 의료비, 가전제품 수리, 차량 정비, 친구 결혼식. 내 경우엔 대략 150만 원에서 200만 원 사이였다. 그래서 비상금 목표를 180만 원으로 정했다. 월급 200만 원 기준으로 약 11개월분이지만, 내 삶에 맞는 숫자다.

Q. 비상금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까요?

통장이 가장 무난하다. 단, ‘입출금 통장’이면 안 된다. 쉽게 꺼내면 비상금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별도의 통장을 하나 더 만들었고, 카드는 발급받지 않았다. ATM으로만 출금할 수 있게. 이렇게 하면 ‘급할 때 쓸 수 있지만, 그냥 흘러나가지는 않는’ 균형이 생긴다.

이자 수익을 원한다면 정기예금도 고려할 만하다. 3개월 만기 상품이면 금리가 약 3% 정도 나온다. 180만 원이면 분기마다 약 1만 5천 원 정도. 작지만 모이면 다르다. 다만 만기가 되기 전에 깨면 금리가 깎이니, ‘정말 필요할 때만’ 꺼낸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Q. 비상금을 써야 할 때와 아닐 때를 어떻게 구분하나요?

이게 가장 어렵다. 지난 3월, 친구가 갑자기 밥을 사달라고 했다. 월급이 떨어지기 전이라고. 순간 비상금에 손이 갔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그건 친구의 비상상황이지, 내 비상상황이 아니었다. 그 경계가 흐릿할수록 비상금은 계속 줄어든다.

비상금을 쓸 수 있는 경우는 정확히 ‘예상하지 못한 고정비’다. 냉장고 고장, 의료비, 차량 수리, 긴급 이사. 반대로 쓸 수 없는 경우는 ‘충동 구매’, ‘친구 도움’, ‘계획 부족으로 인한 부족금’. 이 기준을 정해두고 종이에 붙여두니 훨씬 덜 꺼낸다.

Q. 비상금을 다 쓰면 다시 모아야 하나요?

당연하다. 비상금은 ‘한 번 모으면 끝’이 아니다. 다시 채우는 과정이 중요하다. 나는 월급에서 가장 먼저 15만 원을 비상금 통장으로 옮긴다. 월급이 들어오는 날에 자동이체로 설정했다. 그러면 12개월에 180만 원이 다시 모인다.

만약 비상금을 썼다면, 그 다음 달부터 더 줄여서 채우는 방법도 있다. 평소 15만 원을 넣던 사람이 30만 원을 3개월 동안 넣으면 6개월 걸리던 걸 3개월 만에 채울 수 있다. 비상금이 비어있는 상태가 길어질수록 불안하니까.

Q. 비상금과 투자금을 구분해야 하나요?

반드시다. 비상금은 ‘언제든 쓸 수 있어야 하는’ 돈이고, 투자금은 ‘5년 이상 못 건드려야 하는’ 돈이다. 이 둘을 섞으면 두 가지 다 망친다. 긴급상황에 투자금을 깨고, 투자금이 줄어들까봐 비상금을 안 쓴다.

월급 200만 원 기준으로 비상금 15만 원, 투자금 20만 원, 생활비 150만 원, 여유금 15만 원 정도로 나누는 게 현실적이다. 비상금과 투자금의 비율은 개인차가 크지만, 둘을 섞지 않는 게 핵심이다.

Q. 비상금이 늘어나면 어떻게 하나요?

목표를 정했을 때 그 이상으로 모이는 경우가 생긴다. 180만 원을 목표로 했는데 어느새 250만 원이 됐다면? 나는 그 이상분을 투자에 돌렸다. ETF 매수나 적금 추가 같은 식으로. 비상금은 ‘필요한 만큼’만 있으면 충분하고, 그 이상은 자산을 늘리는 데 쓰는 게 낫다.

다만 금리가 높아지는 시기라면 잠깐 비상금 통장에 두는 것도 방법이다. 지금처럼 3개월 정기예금 금리가 약 3% 수준이면, 여유분 50만 원을 3개월 만기로 돌려도 약 4천 원의 이자가 생긴다. 작은 수익이지만, 비상금이 비어있지 않으면서도 조금의 수익을 얻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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