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다섯 개 샀는데 왜 다 같이 떨어졌을까
2026년 초, 계좌를 열어보다가 멍했습니다. 국내 ETF 두 개, 미국 ETF 두 개, 거기에 글로벌 테크 ETF 하나까지 총 다섯 종목을 들고 있었는데, 전부 비슷한 날 비슷한 폭으로 빠졌습니다.
분산투자를 했다고 믿었는데 실제로는 그냥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자산을 여러 개 산 것뿐이었습니다. 그날 저녁 각 ETF 구성 종목을 뜯어보니 상위 보유 종목에 엔비디아,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겹치고 또 겹쳤습니다.
종목 수가 아니라 상관관계를 봤어야 했는데, 그 기본을 몰랐습니다.
재테크를 오래 한다고 해서 실수가 없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 방심하게 됩니다. 분산투자라는 개념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내 계좌가 분산이 됐는지 제대로 점검하지 않았습니다. ETF 이름이 다르면 다른 자산이라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분산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함정들
가장 흔한 오해는 ‘상품 수 = 분산’이라는 공식입니다. 적금, 주식형 펀드, ETF를 각각 하나씩 갖고 있으면 분산된 것처럼 보이지만, 펀드와 ETF가 모두 코스피 대형주 중심이라면 사실상 같은 위험에 노출된 겁니다. 자산 배분의 핵심은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을 섞는 것인데, 이 부분을 건너뛰고 상품 종류만 늘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하나는 환율 위험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미국 ETF에 약 40%를 넣어두고 환헤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달러 강세 구간에서는 수익이 부풀려 보이고, 달러 약세 구간에서는 실제 자산 가치보다 수익률이 낮게 찍힙니다. 원화 기준으로 수익률을 계산할 때 환율 차이가 연간 약 3~5% 수준의 오차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작은 숫자 같지만 장기 복리로 쌓이면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리밸런싱을 한 번도 안 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처음 설계한 비중이 주식 60%, 채권 20%, 현금성 자산 20%였는데, 1년 정도 지나자 주식 비중이 약 75%까지 올라가 있었습니다. 수익이 난 쪽이 자연스럽게 비중이 커진 건데, 이 상태에서 조정이 오면 처음보다 훨씬 큰 손실을 맞게 됩니다.
지금은 이렇게 바꿨습니다
가장 먼저 한 건 보유 ETF의 상위 10개 종목을 엑셀에 옮겨서 겹치는 종목을 확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지만, 덕분에 실제로 분산이 안 된 부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겹치는 비중이 높은 ETF 하나를 정리하고, 그 자리에 채권 ETF를 넣었습니다. 주식과 채권의 상관관계는 시기마다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주식 하락 구간에서 채권이 완충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리밸런싱 주기는 6개월로 정했습니다. 매달 하면 거래 비용과 세금이 쌓이고, 너무 길면 비중이 크게 틀어집니다. 반기마다 비중을 확인하고 목표 배분에서 10% 이상 벗어난 자산이 있으면 조정하는 방식입니다. 단순하지만 실제로 실행하기 쉬운 규칙이 중요합니다.
재테크에서 실패는 대부분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확인을 안 해서 생깁니다. 분산투자도, 리밸런싱도, 환율 확인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문제는 내 계좌에 실제로 적용됐는지 점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 번 설계하고 방치하는 습관이 가장 조용하고 무서운 함정입니다.